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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제자와 같은 나이 [채성욱 선생의 학교]
    관리자  작성일 2016.03.12  조회 100     

드디어 영화 '귀향'이 개봉했다. 개봉뿐만 아니라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남의 나라 만화캐릭터들이 날뛰는 영화에는 수도 한복판에 도로통제까지 해 주면서 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담는 영화는 시민들의 손으로 제작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지만 이제라도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반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토록 아픈 이야기마저 누군가의 선동이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은 아닐지 말이다.  

 

성공회대에서 가르침을 주셨던 한홍구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적어도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가장 일반적인 민족주의적 관점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 중의 만행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치밀어 오르는 일본에 대한 반감, 분노와 같은 것들이다. 너무나 당연한 관점이자 감정들이지만 단순히 여기에 집중하거나 여기서만 멈춘다면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좁은 관점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는 성차별적 관점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동원되는 남성들, 그들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해소를 위해 인간으로서 존엄과 존재를 포기해야 하고 마치 변기처럼 전락해 버리는 여성들, 그리고 그것을 국가적, 사회적, 제도적으로 용인하거나 묵인하고 동조하는 또 다른 남성들. 이렇게 위안부는 단순히 민족의 문제를 넘어 남성이 본인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여성을 어떻게 짓밟고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충격적 거울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계급적 관점이다. 이는 경제적 사정에 따른 계급으로서 같은 여성 안에서도 경제적으로 하층에 속하는 여성들이 주로 위안부 피해를 겪었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공부는 고사하고 일찍부터 집안의 짐이 되어 버리고는 돈을 벌든지, 시집을 가야만 했던 그 시절의 가난한 여인들. 어린 나이에 집안을 위해 개인으로서의 삶을 버려야만 했던, 그래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에 속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비참함이 위안부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게 되면 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과거에 일본에 의해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현재도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일본군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기억한다는 뜻으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 세워진 '평화비'. ⓒ강한 기자

 


지난해 말 모두를 배신감으로 몰아넣었던 충격적인 위안부 합의를 살펴보면 보수라는 집권 세력이 민족주의적 신념마저 내팽개쳐 버리고 단돈 100억에, 그것도 언제 어떤 식으로 조성될지도 모르는 그 돈에 우리의 아픈 과거를 팔아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에게 위안부 문제란 그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미래를 향한다는 걸음에 걸림돌일 뿐이었으며 그렇기에 얼른 해치워 버려야 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부이자 과거의 피해자로서 국민과 스스로를 보살피고 치유하고 다독여야 함에도 그러한 역할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이들에게는 보수의 전통적 가치라 할 수 있는 민족주의조차도 없다.

 

그냥 이들은 친일파일 뿐이고 또 다른 매국노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프랑스가 독일과 이런 식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합의를 했다면 대규모 혁명이 일어나고도 남을 일이건만 역시 우리의 대중은 그저 착하고 순하고 다루기 편한 모양이다. 학급끼리 다툼이 일어났을 때도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다치고 깨지고 분노하는 아이들은 내버려 둔 채 몰래 담임끼리 말을 맞추고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좀 봐 주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애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의 정부이며 누구의 대통령인지 한심하고 답답할 뿐이다. 일본에 대항해서 싸우기에도 힘드신 할머니들이 이제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도 싸워야 하니 이게 무슨 기가 막힌 상황이란 말인가?

 

또한 일본군만 위안부를 운영했던 것이 아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내부에서도 위안소 설치를 적극 검토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주도세력만 달라졌을 뿐 여성을 단지 군인들의 노리개로, 국가를 위한 암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전혀 바뀌지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과거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고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성이 살아가기에 힘든 세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성에 있어서 여성은 아직도 남성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경우가 더욱 많다. 나도 남성의 한 명으로 성매매의 유혹에 너무나 쉽게 노출되고 있다. 이메일, 각종 전단지, 명함 등을 비롯해 노래방, 안마업소 등 각종 업소를 통해 막말로 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여성을 불러 나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어디 이뿐인가?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은 잘 알다시피 어느 정도는 그냥 참고 넘어가거나 무뎌져야 할 만큼 수도 없이 행해지는 각종 성희롱과 추행들. 매년 증가세를 보이는 각종 성범죄와 이에 대해 유난히, 때로는 이해가 어려울 만큼 관대한 우리의 사법계. 그리고 여성들의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시킨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기도 하는 일부 언론들. 고위층에서도 여지없이 행해지는 각종 접대. 인터넷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각종 몰카나 셀카들. 코피노 문제와 이른바 섹스 관광 실태 등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는 여성을 얼마나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심각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여성의 입장에서 대상이 일본군이냐 아니냐일 뿐 여성을 변기처럼 생각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흙수저로 불리는 신계급, 그중에서도 여성을 둘러싼 계급은 오늘날도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아직도 남성에 비해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게 존재하며 심지어 어린 나이부터 생계를 위해 성매매의 길로 들어서는 여성들도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겨우 16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먹고 살기 위해 노래방 도우미로 일을 하고 있다는 한 여중생의 기사를 보면서 도대체 왜 이토록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우리는 살아야 하는 것일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성들 개인을 둘러싼 이야기에는귀 기울일 생각도 없으면서 그들 전체를 몸이나 팔아서 쉽게 돈 버는 것들로 매도하며 족쇄를 채우고 침을 뱉는 우리의 사회 모습은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간 것이지 강제성은 전혀 없었다며 뒤집어씌우기만 하는 일본의 주장과 다를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역사를 통해 오늘날을 비춰 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이유라고 생각한다. 위안부라는 역사는 우리에게 이토록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있건만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것들만 종합해도 위안부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가해자가 바뀌었을 뿐 아직도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새로운 위안부들이 생겨나고 지속되고 있다. 할머니들 앞에서 정말 부끄러워야 할 것은 일본과 더불어 아직도 이런 사회를 유지시키고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본보다도 먼저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 가야 한다. 모두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올해도 6학년 담임이다. 내년 2월 졸업시킬 때 이 아이들의 나이가 14살. '귀향'의 주인공 정민의 나이와 같은 나이이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그토록 엄청난 일을 겪었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수업을 하다가 말문이 막혀 버리고 아이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그리고 분노의 감정과 함께 마음 한 편에서 아직도 험한 길을 걸을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고개를 든다. 그저 기도한다. 내 제자들만이라도 험하지 않게 살게 해 달라고 말이다. 아직도 이런 기도를 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채성욱 교사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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